기독교

복음을 위해 서라면 틀과 지경을 넘어라

기자들의 눈 2013. 5. 26. 19:52

후패한 자 되었던 만삭된 사도바울의 간증은 세상 벽을 넘었다...

 

벽과 틀을 허문다는 것은 지경을 넘는다는 것이다 근본을 알지 못하고서는 실천하기가 어려운 결단이다 부자와 가난한자 배움이 있는 자와 배움이 없는 자 종교인과 비종교인 각각 여려 형태로 나타나는 사회적 갈등은 어떤 시대에도 벽을 통해 나타나는 문제들이다.

 

하나님과 인간관계도 앞을 보지 못한 사람이 소경처럼 실상을 보지 못해 십자가에서 구원자 예수를 못 박았다.

 

벽은 왜 존재하는가? 바로 사람의 욕망이 존재함으로 마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천차만별 모양으로 인간을 이끌며 기득권자와 피 기득권자들과 충돌하는 이해타산이 욕심으로 죄를 만들고 있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낫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낫는다며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다 인간에게 죄의 삯은 사망의 대가를 지불하라는 요구가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사망 앞에 큰 자나 작은 자나 한 생명은 동일함으로 참 허무하고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마지막 숨통이 끊어질 때 빈 손 임을 알게 되는 것이 인간의 실체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삶의 실체를 얼마나 알고 죽을까? 인민들은 세상이 속이는 거짓 앞에 무지로 살다가 그렇게 앞서갔다.

 

나라가 지경을 만들어 인민들의 길목을 막고 원하든 원치 않던 경계를 넘지 못하게 벽들을 존재하게 만들었다.

 

이런 세상에서 나타난 한 인물이 있다 예수의 제자 사도바울 그는 복음전파를 위해 지경을 넘어 가진 핍박을 받으며 어떤 부류에 있던 사람이건 예수 안에서 벽을 허무는 신앙으로 하나님께 인민들을 인도했다.

 

그는 육으로는 자랑할 것이 많은 선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이요 베냐민 지파로 로마시민권자이며 바리세파 최고의 석학으로 율법의 신성함을 지키기 위해서 이단으로 규정한 예수의 제자들과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거나 죽이라는 특명을 받고 핍박자 의 선봉에 섰다.

 

 

그런 바울이 핍박했던 예수를 다메섹 선상에서 만났다 세상에 속은 자신을 알고 가던 길이 오판 이였음을 깨닫고 도리어 핍박하던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의 세계는 그리스도 안에서 배설물‘이라며 하나님의 미련하다는 전도로 인민들에게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 처한 사람에게도 그 처한 심정의 모양으로 틀을 깨고 다가가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위한 구원 목적으로 그리스도 향기를 내며 벽과 틀과 지경을 허물어 버렸다.

 

복음은 지경을 넘어 전파되기 시작했고 고린도교회처럼 각 교회가 세워지자 교회 안에서도 약하고 강하고 파벌과 율법적 문제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문제가 일어난 교회를 향하여 믿는 자들끼리 벽과 틀의 지경이 만들어지자 복음으로 잉태된 교회를 향해 아비의 마음으로 자녀들을 양육시키는데 애타했고 자신이 복음을 전파하면서 얼마나 모진 고통을 당하고 지경을 넘어 구원을 이루는 예수십자가 죽음을 전함으로 교회가 만들어지고 구원을 받았는지 훈도했다.

 

십자가에서 매일 죽으라는 이 한마디의 간증은 높은 자는 그 자리에서 내려와 섬기는 자가 되고 종으로 있던 자는 예수 안에서 자유자라며 자유 하라고 말했다.

 

오늘 우리에게는 예수를 믿는 신자라고 외치는 집단적 교회 체제에서 높이만 올라가고 있다 벽은 더욱 높아지고 이해집단으로 정치사회 종교적 영향력은 거대한 교회 일수록 바벨탑을 쌓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모습은 지경을 넘고 신분의 벽을 넘어 어떤 이유에서도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려고 했던 사도바울의 사도행전과 달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사라지며 교회는 매일 십자가 앞에 죽는 모습을 가르치기보다 열심을 가르치고 있어 비즈니스 사업장이 되고 구원과 상관없는 종교인들이 집사요 권사요 분별이 없는 높은 자리로 올라가 파벌을 구성하고 있는 모습은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 바벨탑의 높은 벽은 하나님 앞에 무서움을 알지 못해 이 시대 십자가 보혈의 죽는 회개가 필요하지만 외면하고 있어 화 있을진저 보응을 기다리는 고라신아 그 향한 말씀을 귀를 막고 있다.

 

이런 사태를 향하여 염려하는 사도바울의 복음서는 얼마나 교회를 향하여 애타했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그 소리를 무엇으로 듣고 있는지 회개가 없는 교회들은 높은 벽만 쌓고 있다 이스라엘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역사가 없자 거짓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모습을 연상하며 요한1서 3장 말씀을 귀 담아야 듣지 않고 있다.

 

난 십자가의 죽음 앞에 우리의 주님 앞에 복음 앞에 대한민국 교회가 회개하는 역사를 통해 십자가에서 매일 죽는 교회로 거듭나 우리 평신도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굳어버린 목회자들부터 죽어 전염되기를 소원하며 기도한다.

 

지경을 넘지 못하고 벽과 틀을 허물지 못하는 오늘 교회의 모습은 하나님과 단절을 의미하며 내가 구원받고 전도해도 매일 십자가에서 죽지 못한 내 모습을 발견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내 열심을 낸들 기뻐 하시겠으며 위선은 결과적 죄로 인해 사망의 대가를 치루는 것이 그 삯이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어느 정점에 있으며 십자가 죽음이 없는 역사는 모두가 거짓으로 나의 열심도 악이요 십자가 죽음이 없는 기도도 가식이며 바리세인과 살인자 바라바와 가롯 유다는 오늘 나의 욕망의 바다 마음 안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난 무엇을 할 수가 있는 자가 아님에도 하려고 애를 쓴다 십자가에서 나오는 은헤가 아님에도 내 생각을 보태 삶을 살아가며 신앙생활을 이어간다 벽과 지경은 내 자신에게 부터 존재함에도 예수를 붙잡고 죽는 연습을 게을리 한다.

 

인자들이여 예수 안에서는 어떤 모양도 만들지 말라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역사는 하나님이 하신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 이 말을 믿음으로 들어야 한다. 

 

그 소리를 듣는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예수 안에서 쉬는 것을 체험할 것이며 끝없이 올라오는 죄를 십자가에 못 밖아 해결하는 지혜와 능력이 생길 것이며 어떤 형편에 있던지 구원의 은혜가 감사로 나타날 것이다.

 

비로소 내가 죽는 모습을 통해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배우며 붙잡는 지혜가 생겨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함이 나를 살게 함으로 감사와 찬양이 나올 것이다.

 

위대한 십자가의 죽음은 죄인을 살리고 핏값의 저주는 예수가 해결하시고 부활 하셨기에 아무리 외쳐도 다함이 없다 죄인들이여 믿는 자들이여 잠시 우리의 영혼을 위해 쉬어가자 해결책은 자세히 성경을 상고하면 해답이 나온다.

 

그 눈이 열어 주시길 기도하며 지경과 벽을 넘어 쉬기를 원하는 믿는 자들과 동참을 원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피 뿌림으로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기도한다.

 

- 김양훈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