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죄와 싸우는 탄식의 소리

기자들의 눈 2013. 5. 24. 21:51

오호라 곤고한 사람들아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상의 모든 것은 죽음의 끝을 통해 영장류인 인간부터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성경은 해 아래는 새것이 없다고 말했다.

 

인간은 죽음의 끝을 생각하면 너무도 허망하고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야 말로 우주 만물 속에서 먼지와 같은 존재 인식을 새삼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무지 속에서 죄와 싸우다 만신창이 피투성이가‘된 자신을 발견하고 결국 사망의 그늘이 인간을 마지막 벼랑 끝으로 몰아 부치며 자신의 존재감도 알지 못하고 결국 생을 마감하게 하는 끝을 보여 주고 있다.

 

존재감 참 중요한 단어다 어떻게 내 자신을 그 존재감으로부터 인지하고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까 그 해답을 찾으려고 무수한 종교가 탄생했고 철학적 갈래가 가상하지만 죽음의 문턱 앞에서 고귀해 지려고 무단한 노력이 있었던 것이 인류 역사이다.

 

결과와 달리 자칭 선지자적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그 나마 삶을 승화하고 이기려고 노력한 모습도 있었지만 그 것도 모르고 연구치 못해 사라져간 인민들은 정치경제 철학적 종교니즘 앞에 속아 인생을 마감함으로 죽음의 결과를 받아 드렸다.

 

저자는 이 글을 기고하면서 인간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죽음의 문턱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끝까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기적 피투성이로 사투하며 결과도 모르고 죽음 앞에 승복하여야 하는 슬픈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 저자의 목적성이 있다.

 

난 인간을 구원하는 능력자가 아니요 다만 그 징검다리 역할을 통해 소망 없는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구원이 있음을 받은 은혜로 진실을 알리고 싶다.

 

그대여 오늘도 얼마나 고통 속에서 자신과 싸우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상처를 받고 희‘노’애‘락에 잠겨 각자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능함과 방탕함이 극에 달해 욕망의 바다가 자아를 지배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생각을 내려 놓고 자신의 마음 밑바닥을 보자? 만일 보지 못하였다면 저자와 그 마음으로 들어가 보자 당신은 참으로 죄인인가“ 의인인가” 자신은 더러움이 없어 깨끗한 삶을 살아간다는 착각과 이기적이지 않고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할 수가 있는 자라는 무지가 있다면 진심을 고백하여 주기 바란다.

 

거짓된 당신의 진심을 고백한다면 희망이 있는 사람이지만 가식으로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한다면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고 희망이 없는 사람이다 위선자의 말은 모든 것이 거짓이고 삶 자체가 불량하기 때문에 독사의 자식이다.

 

예수가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란 독설로 그들을 책망한 것을 아는가‘ 성경 4복음서를 읽어보면 문안 받기 좋아하는 것과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는 모습과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위선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특히 상좌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누구인가? 그래서 종교적 니즘에 빠진 그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가 더 어렵다고 말한다.

 

모든 율례로 포장해 법과 제도를 만들어 율법주의 신성함을 주장하고 거기에 모양을 만들어 사회적 지배가 인민을 속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양심을 속이는 행위는 회칠한 무덤으로 죄가 가득하다 아름다운 옷으로 세상이 주는 것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린 아담처럼 해 아래서 부셔지는 행위는 낡은 의복과 같다.

 

그런 인민들은 무지함으로 거기에 속고 있고 죄가 무엇인지 깨닫지도 못하고 사망의 포로가 되어 오늘도 의미 없이 인생을 살아가다 결국 죄로 인한 대가가 사망이란 보응을 받아 자신을 깨닫지 못해 불행한 인생을 마감한다. 

 

너무도 안타까워 저자는 양심‘법 거울 앞에 솔직한 진실을 말한다 그래야 죄로 물든 병든 자를 치료를 할 것이 아닌가 병명을 알아야 투약을 통해 병을 다스리고 고쳐 사망이란 불치병을 진단하는 것이고 숨긴다면 치료 방법이 없다.

 

삶이 죄라는 것을 아는가 죄가 아니라면 당신과 나는 대화를 할 가치가 없고 도리어 쟁론만 될 뿐이다 삶이 죄라고 인정하는 사람만 이 대화에 들어올 자격이 있고 사망이란 불치병을 고칠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난 그런 전제에서 대화를 진행하고 이 글을 쓴다 우선 내가 격는 죄에 모습이 당신이 격은 죄에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염두에 주기 바란다.

 

난 오늘도 세상 인생을 삼키려고 돌아 단니는 죄가 인간을 죄의 종으로 삼으려는 사망의 모습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인다.

 

 

그 죄는 내 마음 속에서 끝없이 올라와 사망의 욕망이 인간관계를 통해 더러운 모습으로 나를 죽이고 있다.

 

이해타산‘적 방어 본능과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끝없이 싸운다 인간에게 나오는 더러운 냄새는 나를 너무도 질리게 만들고 마음의 바다는 끝이 없어 오늘도 나를 죽이고 있다.

 

 

채워도 채울 수가 없는 인간의 이기적 완악함을 거울에 좀 비추자 얼굴을 보듯이 율법이란 거울로 계명이란 거울로 이 선한 율법과 계명을 통해 나를 비추자, 오호라 나를 정죄하는 죄의 무서움은 토설하지 않는다면 숨을 쉴 수가 없다.

 

더러움으로 가득한 내 모습은 너무도 추해 썩은 냄새가 진동해 구역질이 나온다.

 

결국 그 율법으로 계명으로 내 죄가 들어났고 사망(죄)이 나를 덮고 죽으라는 대가를 요구 주장하고 있다.

 

이런 문제 해결을 원하는 나에게 죄는 탄식을 불러오게 만들고 정죄하며 사망이란 선물을 매일 주고 있어 인생이 너무도 피곤하다.

 

절로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원하랴 탄식을 토해냈던 사도바울의 간증이 죄에 대한 고내를 이제 알 것 같다.

 

선을 행하려는 원함은 내게 있지만 죄가 나를 주장하여 오늘도 사망을 토해낼 때 마다 내 모습이 얼마나 버러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염세적으로 바라보면 희망을 잃게 만든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여 형제들이여 걱정하지 말라 희망이 있다 이 사망(죄)의 문제점을 풀어 줄 수가 있는 탈출구가 있다.

 

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선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로마서8장1절)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죄와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였음이라.

 

흘려듣지 말라 왜 하나님이 매일 사망에서 허우적거리는 죄로 가득‘찬 인간에게 정죄가 없다며 사도바울은 죄와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였다고 간증하고 있는가 그렇다 우리는 죄로 죽는 날만 받아 놓고 있는 사형수인데 특별사면을 받았다 우리가 일제시대 8,15해방되었듯이 해방을 맞아 식민지 노예가 아닌 당당한 대한민국 시민으로 거듭난 것이다.

 

세상임금은 사단 이였고 그 임금을 이긴 분이 예수그리스도다 한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이 죄인 되었지만 한 사람 예수께서 순종으로 모든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

 

당당히 핏값을 지불하고 얻은 승리였다 그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죽은‘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사시므로 부활로 사망을 이긴 것이다.

 

죽음을 이긴 사실은 부활이란 대 명제가 있었기 때문이고 죄의 대가가 사망 이듯이 부활의 대가가 죄 값을 치루기 위한 십자가의 죽음 이였다.

 

그 죄 속에 나의 죄가 포함되었고 내 대신 주 예수께서 죽으신 것이다 세상 죄 속에 포함되어 넘어간 내 죄는 십자가에서 이렇게 해결되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세례요한의 간증은 예수의 어께 위로 짊어진 세상에 죄 그 것이 보였다 예수는 죽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하나님의 섭리였고 예정 이였다.

 

예수님의 죽음은 성경을 이루는 역사였고 당연히 죽어야 했다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며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죽음을 받아 드리고 부활로 승리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가 있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사랑 앞에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고백으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은혜 앞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무엇을 할 수가 있는 자가 아니라 매일 죽는 연습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죽지 못하면 언제든지 죄가 들어와 우리 몸에 왕 노릇하며 하나님과 교통을 단절 시키는 죄를 범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교회에서도 무엇으로 쓰임을 받고자 열심을 냈던 행위는 참으로 악했다 난 그런 열심보다 내가 십자가를 지고 매일 죽는 연습을 해야 했던 것이다 죽지 못하는 필자는 언제든지 남을 구원에 길로 인도하여 놓고도 실족해 배나 악한 존재로 전략되는 죄를 범하게 됨으로 죽는 연습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했다.

 

신앙이란 믿음의 분량 되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약함을 고백하는 것이다 모세를 보라 자기 민족과 싸우는 바로 백성을 민족을 위해 죽였다 그러나 40년 후 모세는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지 잘 알아야 한다.

 

나는 입이 뻣뻣하여 도무지 하나님의 소명을 행할 수가 없는 자라고 출애굽기에서 고백한다 하나님이 화를 내는 장면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하나님이 행하시겠다며 모세를 강권해 이스라엘 지도자로 삼았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뻣뻣한 못난 자신을 고백할 줄 아는 모세의 간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형제는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받고 교회와 세상에서 무엇으로 열심을 내는 악함을 배우겠는가 아님 매일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그 연습을 통해 죄와 멀리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살겠는가 감사로 나오는 열심은 내가 원하는 열심과 질과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죽는 연습을 배워야 한다.

 

죽지 못할 때 나의 악은 하늘을 찌르며 나의 본성 앞에 진절머리를 친다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얻자 그 긍휼이 없다면 나는 이 세상 살 가치와 희망이 없다.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세세무궁토록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하며 이 글을 읽는 형제들에게 매일 십자가에서 죽는 구원이 임하길 기도한다...

 

- 김양훈기자 -